나정고운모래해변으로 명칭이 변경되었고 물이 맑고 수심이 얕으며 온천 해수탕이 있어 가족 단위 피서객들이 많이 찾는다.
모터보트, 바나나 보트 등의 수상 레저가 가능하며 부대시설과 숙박시설, 주차장이 잘 갖추어져 있다.
백사장 뒤쪽에 100m에 이르는 소나무 숲이 조성되었다.
인근에 감은사지 삼층석탑(感恩寺址三層石塔: 국보 제112호), 이견대(利見臺: 사적 제159호) 등의 유적이 산재하며, 31번 국도변에 있어 경치가 수려하다.
 
 
양남 주상절리란?
마그마에서 분출한 1000℃ 이상의 뜨거운 용암은 상대적으로 차가운 지표면과 접촉하는 하부와 차가운 공기와 접촉하는 상부에서부터 빠르게 냉각된다. 빠르게 냉각하는 용암은 빠르게 수축하게 되어 용암의 표면에는 가뭄에 논바닥이 갈라지듯이 오각현 혹은육각형 모양의 틈(절리)이 생기게 된다. 이렇게 냉각수축 작용으로 생긴 틈이 수직한방향으로 연장되어 발달하면 기둥모양의 틈이 생기게되는데 이를 주상절리(柱狀節理, columnar joint)라 한다.
 
 

기림사 골짜기에 위치한 골굴사의 높은 암벽에 있는 자연굴을 이용하여 만든 12개의 석굴 중 가장 윗부분에 있는 마애여래좌상이다. 조선시대 겸재(謙齋) 정선이 그린 ‘골굴석굴’에는 목조전실이 묘사되었으나 지금은 바위에 흔적만 남아있다.
눈·코·입의 처리에서 형식화가 뚜렷이 진행되고 있으며, 평판한 신체, 직선적인 신체 윤곽선, 얇게 빚은 듯한 계단식 옷주름, 무릎의 물결식 옷주름, 어깨의 V꼴 옷주름 등에서 9세기 후반의 불상 양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보물 제581호로, 867년에 조성된 봉화 축서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및 목조광배와 유사한 작품으로 통일신라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의 본산인 불국사의 말사이다.643년(선덕여왕 12) 천축국(天竺國) 승려 광유(光有)가 창건, 임정사(林井寺)라고 하다가 원효(元曉)가 확장, 중수하고 기림사로 개칭하였다. 1863년(철종 14) 본사(本寺)와 요사(寮舍) 113칸이 불타 없어졌다.
당시 지방관이던 송정화(宋廷和)의 혜시(惠施)로 중건한 것이 현 건물이다. 다행히 《경상도영주제명기(慶尙道營主題名記)》 《동도역세제자기(東都歷世諸子記)》 《부호장선생안(府戶長先生案)》 등의 중요한 문적(文籍)과 근세조선 역대 왕의 어필(御筆) 등이 병화(兵火)를 입지 않고 보관되어 있다.이 밖에 목탑지(木塔址), 3층석탑, 오백나한상(지방유형문화재 214) 등이 있고, 보물로 대적광전(大寂光殿:보물 833), 건칠보살좌상(乾漆菩薩坐像:보물 415), 삼신불(三神佛:보물 958), 복장유물(보물 959) 등이 있다.

 
 
경주시 감포읍에 위치한 감포항의 북단에는 끝없이 펼쳐지는 동해 망망대해를 지키는 송대말(松臺末)등대가 자리 잡고 있다.
송대말은 말 그대로 “소나무가 펼쳐진 끝자락”이라는 뜻인데 수령 300년∼400년 정도의 소나무 숲이 무성하다.
송대말등대는 감포항 인근 해역에는 암초들이 길게 뻗어 있어 작은 선박들의 해난사고가 빈번하자 암초들의 위치를 표시하기 위해 1933년 2월 감포어업협동조합에서 설치하였다.
그러다 감포항 이용선박이 점차 늘어나게 되면서 감포항 북쪽 송대말에 1955년 6월30일 무인등대를 설치했다.
그후 육지표시 기능의 필요성이 제기돼 1964년 12월20일 기존 등탑에 대형 등명기를 설치해 광력을 증강하고 유인등대로 전환했다.
원래 등탑은 백색의 원형이었으나 지난 2001년 12월 등대를 종합정비하면서 통일신라를 이룬 문무왕의 은혜를 기리는 의미로 ‘감은사지 3층 석탑’을 형상화한 모습으로 건립하였다.
또한 전시실을 마련하여 등대 및 바다와 관련된 자료들과 여러 가지 전망대, 석탑 등의 모형을 전시하고 있고, 전국의 7대 등대에 대한 설명도 있어 편리하게 관람할 수 있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바다의 전망이 일품이다.
 
 
 

삼국사기』에는 문무왕이 돌아가신 이후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내가 죽은 뒤 용이 되어 불법을 받들고 나라의 평화를 지킬 터이니 나의 유해를 동해에 장사지내라.(중략) 내가 숨을 거둔 뒤에는 불로 태워 장사할 것이요, 초상 치르는 절차는 검소와 절약을 좇아라.”문무왕은 죽어서 용이 되어 신라를 지키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동해에 자신의 시신을 화장해 뿌려달라고 했고 유언에 따라, 신라 사람들은 동해의 큰 바위섬에 장사를 지냈고 그 바위를 대왕암이라 부르게 되었다.
멀리서 보면 평범한 바위로 보이지만, 가까이 가보면 바위 한가운데가 못처럼 패여 있다. 유골을 안장한 곳이 아니라 유골을 뿌린 ‘산골처’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문무왕은 삼국통일을 도왔던 당나라의 위협 사실을 알고, 8년에 걸쳐 당나라군을 몰아내기 위해 많은 노력 기울였다. 또한, 왜적의 동해 침입을 걱정하여 죽어서도 용왕이 되어 동해바다를 수호하겠다는 호국정신은 신라인의 마음 속 깊이 남아 설화에도 등장하고 있다

 
 
1937년 읍으로 승격될 만큼 일제시대부터 번창했던 아름다운 항구이다.
규모가 아기자기하면서도 멋진 등대가 우뚝 솟아있는 감포항은 드나드는 어선이 많은 동해남부의 중심 어항이다.
지금도 일본식 건물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으며, 바다를 바라보며 재래시장이 들어서 있고, 문무대왕릉에서 감포항으로 이어지는 해안도로에는 싱싱한 회를 맛볼 수 있는 횟집과 민박집들이 즐비하다.
감은사지 석탑을 본떠 만든 송대말 등대에서 또는 북쪽 산꼭대기에 자리한 고대안에서 보는 감포항의 풍광이 멋지고 방파제는 동해 일출을 감상하기에 좋은 포인트로 예전부터 널리 알려져 왔다.
 
 

이견대는 삼국통일을 이룩한 문무대왕의 수중릉인 문무대왕릉을 곧바로 바라 볼 수 있는 곳으로 감은사를 완공한 신문왕이 이곳에서 용이 된 문무왕과 천신이 된 김유신이 마음을 합해 내려준 보물인 만파식적을 얻은 곳이다.
나라를 지키는 용이 되겠다던 문무왕이 동해에 홀연히 나타나자, 그 해안의 언덕 위에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이견정’이라는 제법 큰 정자가 있는데, 1979년 정부에서 대지에 남아 있던 초석들을 근거로 새롭게 건립하였다.
이견대 아래쪽에는 문무왕의 호국의지를 돌이켜 생각하면서 ‘대왕암’이라는 시와 ‘나의 잊히지 못하는 바다’라는 시를 쓴 우현 고유섭(1905~1944, 미술사학자)의 기념비가 서 있다.

 
 

감포항과 가까운 북쪽에 자리하고 있다. 모래가 부드러워 모래 찜질이 유명하다.
※오류해수욕장은 오류고아라해변으로 명칭이 변경되었습니다.(2011. 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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